ART SPACE KC
철사로 드러낸 존재, 빛과 어둠으로 살아나
멀리서 보면 흑백 사진인가 싶다.조금 더 다가가면 수묵화처럼 보인다.그리고 눈 앞에 펼쳐지는 놀라운 광경.

바람에 물결치는 갈대 잎새들처럼,혹은 바위에 단단히 붙어있는 이끼처럼 빼곡하게 저마다의 깊이와 두께,간격으로 박힌 철사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철사들의 꼬임과 모양도 모두 다르다.상승과 하강,곡선과 직선,여백과 채움을 오가며 만들어낸 점과 선들의 입체적 조합이 탄성을 자아낸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김용진 작가는 강원 고성에 온지 올해로 10년이 됐다.

김 작가의 작업은 엄청난 집중력을 요한다.철사 꼬는 방법과 횟수,간격을 정밀 계산한 후 반복해서 꽂는 고행에 가까운 방식이다.100호를 기준으로 작품 하나를 만드데 3달여가 걸린다.그런 그에게 사람을 자주 마주치지 않아도 되는 고성의 한적한 바닷가는 완벽한 작업공간이었다.
하지만 2019년 4월,동해안 대형산불이 고성 토성면 용천리에 있던 그의 작업실을 덮쳤다.공간은 모두 불탔고,고된 작업 끝에 완성해 뒀던 100호 짜리 대형작품 여러 개를 그날 잃었다.하지만 작가는 완전히 불타버린 작업실에서 전시를 가지며 아픔을 달랬다.다른 곳에 보관한 덕에 화마를 겨우 피한 작품들을 선보였고,그해 9월에는 서울에서 개인전도 가졌다.

이후에도 작가는 고성 바닷가를 떠나지 않았다.이재민들에게 주어진 컨테이너에서 생활하며 작업을 이어갔다.지금은 바로 옆 동네인 토성면 성대리로 옮겨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김 작가의 작품 모델은 주로 달항아리와 누구나 아는 위인들을 중심으로 한 인물화다.이들을 그리는 도구는 붓과 물감,끌이나 망치가 아니라 그가 직접 꼬아 만든 2∼3㎝ 길이의 철심이다.0.2㎜부터 시작되는 다양한 굵기의 철사들로 톤과 명암을 조절한다.

이같은 방식의 작업은 2000년 무렵 본격적으로 시작해서 20년이 넘었다.

그의 원래 전공은 조각이다.홍익대 조소과를 졸업한 그는 학창시절부터 철사라는 소재에 관심이 많았다.교통사고로 다리를 다친 후 주로 앉아서 할 수 있는 작업을 고민하다 이 재료에 더욱 집중하게 됐다.즐겨 쓰던 철사를 한 번,두 번,세번 이상 꼬거나 아예 덩어리로 만들어 보는 등 여러 시도를 통해 다양한 패턴을 만들었고,이를 숫자로 매겨 농도를 좌우하는 스펙트럼으로 썼다.

1번 패턴이 단독으로 쓰일때,2번 패턴이 군집할 때,또 1번과 2번이 섞일 때…수많은 조합에 따라 또다른 질감과 명암이 만들어 진다.이처럼 톤을 달리하는 철사들로 회화적 느낌의 작품을 완성할 수 있다는 것이 김 작가의 설명이다.작품당 들어가는 철사 갯수와 양은 작가 스스로도 세지 못할 정도다.지난 산불 당시 철사꼬는 기계도 불탔다.때문에 요즘에는 손으로 일일이 꼬아 철사 재료를 만든다.김 작가는 “유연해서 다루기 쉬운 철사를 좋아해서 대학 때부터 작업해 왔다”며 “제 작품을 멀리서만 보다 가까이 다가와 자세히 본 분들은 모두 놀란다.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방식이라 많은 분들이 재미를 느끼시는 것 같다”고 했다.
그의 작품 장르는 설치미술,회화,조각,그 어딘가에 있다.회화적 재미가 있는 입체부조라는 표현이 비교적 적확하지만 작품 성격을 완전히 규정할 수는 없다.철사마다 길이와 두께가 다른만큼 빛을 어디에서 얼마나 비추느냐에 따라 드리우는 그림자마저 달라진다.관객의 관람 각도에 따라서도 작품의 결과 감상을 새로 만들어 낸다.

김용진 작가는 경기 성남 판교 스타트업캠퍼스에 있는 아트스페이스KC에서 개인전을 갖고 있다.오는 2월 26일까지 열리는 이번 개인전에는 100호 작품 4점을 포함해 14점이 전시된다.스티븐 호킹 박사,스티브 잡스,빌게이츠,김구 선생,간디,파블로 피카소 등의 인물과 달항아리들이 태어났다.

김 작가의 다음 모델은 ‘방탄소년단(BTS)’ 일곱 멤버다.가까이 다가갈수록 제 모습을 드러내는 철사들이 대형 스타디움으로 갈수록 커지는 관객들의 함성,세계 최고의 그룹으로 우뚝 설 수 있도록 해 준 수많은 팬들의 진심을 비유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사랑받고 있는 그들의 수많은 사진 중 어떤 순간을 고를 지 고민 중이다.귀띔 하나 더.방탄소년단 팬들과 함께하는 참여형 작품도 구상하고 있다.작은 마음 하나하나가 모여 기적을 이루는 것.그것이 김용진 작가의 작품이 직유하는 세상의 이치다.
김여진 beatle@kado.net

출처 : 강원도민일보(http://www.kado.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