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SPACE KC
-작가노트-
욕망은 언어로 표현될 수 없는 내부 세계에서 외부세계로 출몰하는 인간의 본질이다. 욕망은 신체 내부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타자라는 외부 요인에 의해 출현한다.
그러나 욕망의 대상은 부재한다. 그러므로 성적 욕망을 토대로 그려진 여성의 신체는 욕망이 그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소환하는 대체물이 된다.

시선과 응시의 충돌을 통해 주체와 객체, 욕망과 물신의 관계를 드러내고 타자의 대상화를 통해 자아의 대상화가 이루어지는 과정은 욕망하는 자신의 내부를 마주보게 되는 순간이자 인간 존재론적 차원에서 주체가 발생하는 순간이다. 따라서 욕망하는 나는 필연적으로 수동적인 주체가 될 수밖에 없으며 사유를 촉발시키는 욕망의 기호들을 마주할 때, 욕망하는 주체로서 살아있는 존재라는 점을 확인하게 된다. 예술로의 실천은 바로 욕망에 의해 살아있음을 기록하는 나의 표현이며 욕망이 비로소 예술의 형태로 가시화되는 곳에 나의 욕망은 예술의 원인이 되면서 살아있음을 반복해서 환기시키는 나의 본질이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

이호련의 회화

고충환(Kho, Chung-Hwan 미술비평)
<시선과 응시가 교차하는, 욕망의 모호한 대상> 중 발췌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고, 도구를 사용하는 동물이며, 놀 줄 아는 동물이다. 이로부터 철학과 사상이, 문명과 문화가 유래했다. 이처럼 동물 일반과 구별해 인간의 특수성을 정의한 경우들이 여럿 있지만, 그 중 가장 강력한 경우로 치자면, 인간은 욕망하는 동물이다.
욕망은 인간의 타고난 자질이며, 천성이고 본능이다. 욕망은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다. 반제도적이고 반사회적이다. 욕망은 자기를 실현하려하고, 제도는 욕망을 억압하려 한다. 욕망을 통제하는 것, 욕망을 감시하는 것이 제도의 관성이다. 욕망을 컨트롤하는 것에 건전한 그리고 건강한 사회의 성패가 달려있다. 그러므로 적어도 외적으로 보기에 욕망이 자기를 실현하는 길은 요원해 보인다. 그렇담 욕망은 자기실현을 포기해야 하는가. 여기서 욕망은 제도를 속이는 방법을 생각해낸다. 제도가 견딜만한 욕망, 제도가 수용할만한 욕망, 그래서 제도의 포용력을 증명하고 전시하는 욕망, 나아가 제도가 권장할만하고 제도에 기여한다는 착각을 주는 욕망으로 제도를 속여 자기를 실현한다. 욕망이 아닌 척하면서, 아님 공공연하게 유익한 욕망인 척 가장하면서 자기를 실현한다(그런데, 유감스럽게도 공적인 욕망은 없다. 모든 욕망은 사적 영역에 속한다. 다만 사사로운 욕망이 공적 영역으로 전염될 수 있을 뿐).
그러므로 욕망에도 두 부류가 있다. 적어도 외적으로 보기에 자기를 실현한(혹은 실현한 것으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욕망과 억압된 욕망, 의식적인 욕망과 무의식적인 욕망이 있다. 그러므로 인간의 자기분열은 필연적이다. 인간은 욕망의 동물이고, 그 욕망이 자기를 실현한 욕망과 억압된 욕망으로 분열되는 것에 따른 것이다. 그렇게 분열된 자기에 붙여진 이름이 각각 페르소나고 아이덴티티다. 네가 보고 싶은 나 그러므로 네가 욕망하는 나의 모습이 페르소나고, 네가 본 적도 알 수도 없는 나, 때로 나 자신에게조차도 그런 내가 아이덴티티다. 주지하다시피 페르소나는 가면이다. 진정한 나일 수가 없다. 그렇담 진정한 나는 누구인가. 무의식의 지층으로 추방된 나, 억압된 욕망이 키운 상처를 쓰다듬으며 호시탐탐 시간을 재는 나, 좌절된 욕망과 동일시되는 나, 그러므로 나의 나, 어쩜 나의 너, 곧 타자로서의 주체다.

이호련은 바로 이처럼 시선과 응시가 교차하는, 욕망과 욕망이 투쟁하는 심리적 현실을 그리고 현장을 그린다. 보고 싶은 욕망(시선의 욕망)은 주체로서 군림하려는 욕망이다. 여기에 자기를 보여주는 척하면서(유혹하면서) 주체를 탈취하려는 또 다른 욕망이 대응한다. 유혹하면서 주체를 탈취하는 것, 바로 응시가 시선을 맞이하는 방법이고 운명이다. 중첩돼 보이는, 흔들려 보이는, 초점이 나간 사진처럼 흐릿해 보이는, 희뿌연 막을 통해 보는 것처럼 애매해 보이는 그림 속 정황은 바로 이처럼 보고 싶은 욕망을 방해하는, 유혹하는 척하면서 주체를 탈취하려는 너의 그러므로 응시의 책략을 그린 것이고, 어쩜 운명(응시의 운명)을 그린 것이다. 무장 해제되고 싶지도 않고 될 수도 없는 너를 그린 것이다. 욕망의 모호한 대상을 그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