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SPACE KC
암각화에서 보여지는 각인된 선()’은 깊은 원초적 생명감으로 나에게 다가왔고,
어떤 평론가는 그어진 선이 아닌 각인된 선에 대한 나의 집착을 완벽함의 추구라 풀었는데 그건 살아온 나의 성향를 살펴보면 굉장히 설득력이 있는 듯 했다.
분청사기에서 이라는 인위적 행위에 의해 거의 돌처럼 단단해지고,
그 위에 새겨진 질박한 형태의 선은 마치 선사시대의 암각화에서 보여지는
생명력과도 흡사하다.
언뜻 보면 축소된 자연의 이미지라고나 할까
맑으면서도 적당히 탁한 그 빛깔과 선
그것은 서양의 화이트와는 전혀 다른, 마치 광목 같은, 세월을 머금은 우리 백의민족의 뽀얀 색 이었고, 불에 의해 굳혀진 드로잉으로 나타나는 각인된 선은 세련되진
않았으나 무심한 듯 무척이나 자유로워 보였다.
당시 동굴벽화나 암각화의 생명감에 빠져 있던 내게 이것은 좀 더 가까이 우리의 감성으로 다가왔고, 이내 1992년부터 한지의 섬유질을 통해 찢겨진 선과 흙이나 돌의 질감을 바탕으로 생명 순환의 이야기를 담은 풍경의 단면을 표현하고 있다.
자연 속 풍경에서 드러나는 선()과 나의 주관적인 감정의 선이 겹치며,
선과 선이, 때로 점과 점이 만나는 자리에는 공간이 열린다.
나는 줄곧 ()’, 그러니까 흙이 발라진 젖은 한지 위에 찢겨지는 이 가지는 자유로움과 변화에 집착해 왔고, 그러나 그것이 이루는 형상보다는, 자유로이 뭉치거나 흩어지면서 어떤 대기와도 같은 유동적인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그것은 때로 들판이기도끝 없는 산이 되기도 했으며, 또 때로는 숲 속 풀들의
흔들림이기도 했다.
이렇게 나의 그림에서 물감이 가해지지 않은 공백의 여백은 존재하지 않지만
이러한 공간이 자리함으로써 다른 형상들과 트임 새를 보여주고자 하였다.
한지와 흙의 물성을 기조로,
젖은 한지의 찢겨 진 선이 이루어내는 원시적 미감과 분청의 뽀얀 색감은
이내 생명을 이야기하는 은유적 풍경을 지나,
이제는 `반복되는 선()’으로 이루어진 이러한 공간에 더 집중하고 거기에 이라는 소재로 나의 정서를 담아 보았다.
선묘 풍경은 이 전의 어느 정도 Landscape적인 풍경의 요소를 줄인
Scene적인 풍경으로, 배경으로 보이는 바탕의 단계를 생략하여 화면이 한 시선에
놓이고자 하였다.
어느 만큼 살아온 내게 이란
내가 서 있는 인생의 어떤 시점에서 문득 느껴지는
뒤로 지나온 것들과 앞으로 남아 있는 것에 대한 생각이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여러 은 결국 자신을 향해 있을 때
가장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것이 아닐지
은 물이 되어 그 을 향하고
은 또 산이 되어 향해 있고
나는 결국 나의 에 있음이 가장 적절한 것일 테니 말이다.
그리고 이란 결국 자신을 이루는 것이 아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