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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입체의 이중주: 저만큼 멀리서, 이만큼 가까이서

이주은 (성신여대 교수, 미술평론가)

 

세상은 물질로 가득하고 인간은 자신의 필요에 따라 그 물질을 변화시킨다. 예술가는 물질을 깎고 붙이고 두드리고 다듬어 이미지를 만든다. 그렇게 재료와 씨름하는 과정에서 그것과 하나가 되고, 또 재료의 차원을 넘어서는 기쁨을 맛보기도 한다. 김용진은 철사라는 재료의 세계에 빠져든 작가이다. 철사를 긴 선으로 표현하는 대신 그는 다양한 침의 형태로 캔버스 위에 곧추세운다. 따끔거리도록 예민한 철사 침들은 역설적이게도 매끄러운 도자기라든가 부드러운 얼굴의 형상을 만들어낸다.

김용진의 작품은 멀리서 보면 그림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입체이다. 밑그림의 ‘점’과 철사의 ‘선’이 모여 전체적으로 ‘면’을 이루는 것이다. 그는 캔버스 위에 하나하나 점을 찍어 철사 침을 심는데, 점과 점의 간격을 일일이 계산하여 밀도를 다르게 표현한다. 침의 생김과 높낮이에도 차별성을 두어 양감과 질감, 원근과 명암 처리를 해준다. 한마디로 김용진의 작품은 점, 선, 면이라는 미술의 기본 언어에 충실하다고 할 수 있겠다.

기본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가볍고 얄팍한 유행에 휘말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감각적인 작품들이 만연한 가운데에서도 흔들림 없이 김용진은 자신만의 기본 언어를 지키고자 한다. 유행이란 시기를 탄다. 새로운 스타일이 나타나면 조금 전의 유행은 구식으로 몰린다. 현대적이라고 생각해온 스타일들이 금세 따분한 것들이 되고 만다. 예술은 영원하다는 말 자체가 무색할 정도로 예술이 변덕스러워져 있다. 이런 예술을 위해 예술가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어떤 이는 말한다. 본래 예술이란 인간이 어떻게 세월을 보내느냐 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일 뿐이라고. 김용진은 하루 종일 쉬지 않고 작업에 시간을 바치지만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는 데에는 그런 하루들이 겹겹이 쌓여야 한다. 달리 말하면, 그가 세월을 하루하루 축적하는 방식, 그게 바로 그의 작품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가 작품의 재료를 다루는 과정과 태도에 주목하는 것은 중요하다. 물성을 다룬다는 것은 재료가 가진 풍부한 가능성을 바탕으로 그것에 반응하고 나름대로 해석하는 일이다. 대부분의 생산적인 직업과 마찬가지로 예술가도 일단은 재료를 다루는 기술이나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 창의적 아이디어란 재료를 기술적으로 다루고 이해하는 과정에서 부차적으로 솟아나온다.

단순히 독특한 소재를 고르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재료를 직접 마주하고 그것과 밀고 당기기를 지속할 때 비로소 물성은 작동된다. 즉 재료와 작가의 끈질긴 관계 속에서 물성에 대한 탐색은 완성되어 간다. 그 관계 맺음은 수행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시간을 잡아먹으며 수고스러운 과정일 것이다. 하지만, 그 경험이 없이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것이 물성의 세계이기도 하다.

김용진은 집요하게 반복하는 방식으로 작업하는 사람이다. 반복 자체는 지겨움의 연속으로 보일 뿐이지만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된다. 예술작품을 제작한 사람의 진정성을 나타내주는 잣대가 되기 때문이다. 반복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지극히 일상적인 것이다. 일상은 습관적으로 TV를 켜는 것처럼 별 볼일 없는 행위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그래서 오래도록 일상의 단조로운 단면들은 예술의 차원에서 주목할 가치가 없다고 여겨져 왔었다. 하지만, 예술행위라고 해서 처음부터 숭고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김용진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수많은 예술적 가능성들을 한꺼번에 펼치는 일이 없다. 오직 단순한 몇 개의 행위들로 제한하고 그것을 반복함으로써 형상을 만들어 나간다. 오래전 그는 손으로 철사를 일일이 고불고불하게 돌려말았었다. 그러다가 몇 년 전부터는 철사를 원하는 모양대로 꼬아서 잘라내는 기계를 장만했다. 철사를 말아 단위형태를 만드는 기계작업도 커다란 전체가 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준비단계이다. 궁극적으로 이 하찮은 단위 하나하나가 전체 이미지를 품게 되는 것이다.

한번 꼬인 철사들을 모았을 때와, 두 번 꼬인 철사들을 모았을 때 농담효과는 달라진다. 이런 효과를 수학적으로 체계화하려면 기계작업은 필수이다. 적게 꼬였을수록 여백이 많아져 묽은 느낌을 주고, 많이 꼬였을수록 색과 농도는 짙어진다. 다양한 단위의 핀으로 농담처리를 함으로서 단순한 점묘회화를 넘어선, 입체로서의 특이한 재미를 살리고 있다.

거대한 산을 옮기기 위해 매일매일 삽으로 흙을 퍼서 날랐다는 우공이라는 옛 중국인의 이야기를 생각해본다. 우직함이 결국은 산을 옮기는 원동력인 것이다. 반복은 무의미가 아니다. 평범한 반복 속에 인간의 존재 이유가 담겨 있으며, 창조의 가능성이 내재되어 있다. 반복은 전체를 아우르는 의미심장한 무엇임에 틀림없다.

김용진의 작품은 한번은 저만큼 멀리서 바라보고, 두 번째는 이만큼 가까이서 들여다보아야 한다. 가까이서 보면 점들이 전체를 채우지만, 멀리서 보면 전체는 점들로 인해 나뉘어져 있다. 반복행위들이 쌓인 집적의 결과물을 꼼꼼히 보는 일은 멀리서 볼 때와는 전혀 다른 별개의 경험이다. 눈앞에 마주하는 미세한 점들이 점차 번지는 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번지듯 퍼져 나간 전체 이미지는 때로는 그릇이 되고 때론 소나무가 되고 때론 누군가의 얼굴이 된다. 하나의 이미지가 확산과 분열을 동시에 진행하는 경이로운 이중주인 셈이다.